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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구상 [2004년 08월 30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27



▶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 대표단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필자(오른쪽에서 둘째, 앉아 있는 사람).


포이 회장과의 심야 담판이 결렬된 다음날 나는 워싱턴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세계은행 및 미국 수출입은행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잡혀 있었지만 헛걸음이 될 게 뻔했다. KISA의 핵심 멤버인 포이가 튼다면 다른 방도가 없었다.

포이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워싱턴 일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못 도와드려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정중히 답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의례적 절차를 위해 워싱턴으로 가진 않겠습니다."

포이가 측은해 했다. "하와이 해변가에 괜찮은 콘도를 하나 갖고 있는데, 돌아가시는 길에 잠시 쉬었다 가시지요."

치명적인 병을 주고 약봉지 내미는 격이었지만 나는 그 제안을 정중히 받았다. 그의 권유처럼 좀 쉬고 싶었다. 아니, 이 끔찍한 난관을 극복할 궁리에 몰입하고 싶었다.

정부 협상단은 워싱턴으로 가고, 나는 일행과 함께 하와이로 날아갔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고급 콘도에 여장을 풀었다. 모처럼 넘쳐나는 것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절망의 골짜기에서 빠져 나올 밧줄을 잡아야 했다.

와이키키 모래사장에 드러누웠다. "제철소에 인생을 걸었는데, 돈 1억달러를 못 구해 이렇게 나자빠져야 하나. 하늘도 무심하다." 하늘을 향해 농성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해변가에서 뒹굴던 중 갑자기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온몸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대일 청구권 자금, 일제 식민지 배상금! 조상의 피맺힌 돈이 남았을 것이란 생각이 스친 것이었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런 것을 예술가들은 영감(靈感)이라고 부를 것이다. 나에게도 그건 영감이었다.

손가락을 짚어가며 계산을 해봤다. 1966년부터 1975년까지 10년에 걸쳐 분할 지불하기로 한 무상자금 3억달러 중 아직 1억달러는 남아 있을 것 같았다. 7년 거치 20년 상환에, 확정금리 연 3.5%의 저리 장기차관인 일본의 대한(對韓) 대외경제협력기금 2억달러 중에도 여분이 있을 듯했다. 박 대통령에게 KISA와의 협상 결렬 전말을 보고하고, 방금 떠올린 기막힌 아이디어의 구두 승낙을 받는 게 급선무였다.

청와대로 전화를 걸었다. "그 놈들하고는 다 틀렸습니다. 우리가 기만을 당한 겁니다." "무슨 소리야? 우리 협상단은 기대를 걸고 있던데-." "워싱턴에서도 안되게 돼 있습니다. 믿지 마십시오. 사업적으로 안 된다는 놈들을 무슨 재주로 끌고 오겠습니까?"

박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방도가 없겠나? 무조건 제철소는 지어야 해."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 전화 드린 겁니다." "뭔가?" "대일청구권 자금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무상 유상 합치면 1억달러는 안 되겠습니까?" "그래, 좋아! 자네가 기막힌 생각을 해냈군. 그 정도는 될 거야."

박 대통령은 즉시 수락했다. 우리는 그 돈을 영일만으로 끌어오기 위한 방법도 의논했지만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당장 넘어야 할 벽이 일본 내각과 의회, 일본 철강업계였다. 일본은 자금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비준 문서에 돈의 용처까지 명시해 뒀으니 그걸 바꿀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농업에 지원하기로 한 자금을 제철소 건설비용으로 돌릴 경우 일본부터 반대하고 나설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직접 부닥쳐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와이에서 곧바로 도쿄로 날아갔다.


2004년 08월 30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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