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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챔프 김기수 [2004년 08월 25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891



▶ 세계 챔피언 김기수 선수가 '권일 도장'에서 훈련하고 있는 모습. 왼쪽에서 넷째가 필자다.


1965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나를 청와대로 불렀다.

"우리나라에 동양챔피언 있는 거 알아?" 뜻밖의 질문이었다. "무슨 챔피언 말씀입니까?" "이거." 박 대통령은 싱겁게 웃으며 가벼운 훅을 날려 보였다.

"그쪽은 취미가 없습니다." "김기수란 친구가 있어. 물건이야. 굉장히 세다는데, 우리 국민의 사기 진작을 위해 세계챔피언도 나와야지. 다른 나라를 이겨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해."

대한중석을 살려냈으니, 권투를 후원해 보라는 뜻이었다. "세계챔피언 되는 데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도와주게." 일부러 한 발짝 뒤로 뺐다. "중석 하랴, 제철소 공부하랴, 힘듭니다." "여보게, 그것도 국가사업이야." 대통령이 싱긋 웃었다.

'헝그리 복서'란 말이 있다. 오늘의 상처와 내일의 골병을 감내하겠다는 각오로 나서야 하는 프로복서의 길. 배부른 요즘에는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배고팠던 과거엔 프로복싱이 인기 스포츠였다. 주먹깨나 쓰는 배고픈 청년들이 챔피언의 꿈을 키우곤 했다. 김기수도 그들 중 한명이었다.

즉시 김기수를 찾아오게 했다. 주니어 미들급이라는데, 과연 체격 좋은 친구가 나타났다. 악수를 나눴다. 손이 크고 아귀 힘이 셌다. "어디 출신인가?" "함흥에서 내려왔습니다." 사정이 딱했다. 1.4 후퇴 때 배를 타고 내려오다가 강릉.포항에 못 내리고 여수까지 흘러갔고, 여수 중에서 권투를 시작했다고 했다. 1.4 후퇴와 함흥이란 말이 내 마음을 끌었다. 50년 겨울 원산.함흥.성진을 거쳐 청진까지 북진했으나 맹장 수술을 받은 환자 상태로 1.4 후퇴 때 통한의 철수 길에 올라야 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세계챔피언이 되고 싶나?" "예." "지금 너의 상대가 어떤 놈이야?"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라는 친굽니다." "자신 있나?" "한 6개월 연습에 전념한다면 …."

나는 김기수에게 필요한 것을 말하라고 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도장이었다.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경희대 근처라고 했다. 총무이사에게 집 가까운 곳에 이른 시일 내에 도장을 지어 주라고 지시했다. 며칠 뒤 서울 신설동에 터를 구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한 달 안에 끝내라고 했다.

근사한 권투체육관이 생겼다. 개관식을 앞두고 내게 '작명'의뢰가 왔다. '주먹으로 세계 일등이 되라'는 기원을 담아 '권일(拳一)'이란 이름을 선물했다.

"이름이 어때?" 김기수가 순진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무식해 잘 모르지만 이름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럼 됐어. 그 이름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훈련해 기필코 주먹으로 세계를 제패해 봐." 나의 작은 손이 김기수의 굵은 어깨를 다독였다.

그런 뒤에 가끔 '권일'에 들렀다. 사범도 보였고, 꼬마들도 보였다. 김기수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66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16주년이던 그날 저녁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WBA 세계타이틀전이 열렸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었다. 박 대통령도 직접 관전했다. 엇비슷하게 맞고 때렸다. 예측 불허의 승부였다. 대통령 앞의 큰 재떨이에 꽁초가 수북이 쌓였다. 오후 10시가 넘어 15회전이 끝났다. 한국 심판이 김기수 승, 이탈리아 심판이 벤베누티 승으로 판정한 가운데 서양인 주심이 김기수 승을 선언했다. 한국 최초의 세계챔피언이 탄생한 것이다. 


2004년 08월 25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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