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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인사와 빈대약 [2004년 08월 24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082

 

▶ 대한중석 사장으로 부임한 직후 상동광산의 막장에 내려가 채탄 과정을 살펴보는 필자(앞줄 왼쪽에서 둘째).


 "앞으로 우리 회사 인사는 예외 없이 공정을 기하고, 능력에 따라 승진과 보상을 결정한다. 외부 인사청탁은 절대 용납하지 않고 그런 사원은 인사조치 하겠다."

대한중석 사장 박태준의 첫 선언이었다. 부임에 앞서 나는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어느 누구의 경영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첫 시험이 청와대 고위인사의 인사청탁이었다. 그와 나는 고함을 질러가며 싸웠다.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리더십을 얻으려면 실천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하고 한번 꺼낸 말은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법이다. 나는 문제의 사원을 해고했다. 며칠 뒤 부산에서 올라온 그의 홀어머니가 사장실로 찾아왔다. 전쟁 때 남편을 잃고 혼자서 어렵게 공부시킨 외아들이라고 했다. 홀어머니는 "하나 남은 나의 마지막 희망인 아들을 살려 달라"고 매달렸다. 그의 간청이 내 가슴을 울렸지만 어금니를 깨물고 거절했다. 훗날 나는 그를 찾아내 포스코로 불렀다. 전쟁 미망인의 눈물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 아들은 포스코에서 과장까지 지내다 다른 길로 갔을 것이다.

공정한 인사관리보다 더 시간이 드는 것은 복지체제 개혁과 경영관리 체계화였다. 사장으로 부임한 직후 나는 강원도 상동광산을 찾았다. 세계 제일의 중석광산이란 명성에 걸맞게 웅장했다. 검은 산 속으로 화차가 드나들고 광원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설비도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광원들은 활기가 없어 보였다. 그건 피로와는 또 다른 종류였다.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막장까지 내려가 꼼꼼히 살폈으나 별로 문제될 게 없었다. 다시 올라와 산자락의 사원주택을 둘러보았다. 헛간이나 축사 같았다. 종업원 복지문제를 헌신짝처럼 팽개쳐 뒀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개울가에 빨래 나온 아낙네들이 보였다. 광원의 부인들이었다. 나는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새로 부임한 사장이니 무엇이든 편하게 건의하라고 했다. 반응이 없었다. 세 번이나 묻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낙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택에 빈대약 좀 쳐주세요."
"빈대약요?"

허를 찔린 셈이었다.'빈대약'이라니 …. 너무 보잘것없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원들의 주거 환경에 대한 모든 불만을 담은 단어였다. 한 젊은 아낙은 빈대가 하도 많아 식구들이 밤잠을 못 잔다고 했다.

즉시 빈대약을 치도록 엄명을 내린 다음 관리자들에게 사원주택 건설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그는 봉급 맞추기도 빠듯하다고 징징거렸다.

"회사 경영은 내가 책임져. 당장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겠는가, 아니면 사표를 내겠는가?"

현장에서 불호령을 때리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직원 복지를 담당하는 임원을 사장실로 불렀다. 당신은 상동광산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직책 맡은 지 2년밖에 안 되고 너무 바빠 한번도 못 가봤다고 했다.

"일제 소림광산 때 지은 다락 같은 사택들이야. 너무 낡고 빈대가 많아 못 살 정도니 당장 다 헐어내도록 해."

그리고 그 자리에 연차적으로 아파트를 짓도록 지시했다. "지금 바로 짐을 꾸려 현장으로 내려가. 직원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대책을 보고해"라는 호통과 함께 -. 아마 내 눈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렸을 것이다.


2004년 08월 24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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