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 영상
  • 연구결과물
  • E-카다로그
  • 발전기금
  • HOME
  • 박태준의삶
  • 쇳물은 멈추지않는다
  • 인쇄
  • 글자크기
  • 확대
  • 초기화
  • 축소

게시판 List
1964년의 일본열도 [2004년 08월 22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36


▶ 1964년 1월 일본 도코에서 스쯔미 주으이원의장(오른쪽에서 둘째)을 만나 환담하고 있는 필자(왼쪽에서 둘째)


1964년 1월 초순,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한.일협정 막후 접촉을 위해 도쿄로 날아갔다. 열달 가까이 일본 열도를 돌아다닌 우리 일행은 전직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 두 사람과 수행비서 최정렬이었다. 하네다 공항에는 자민당 부총재 오노가 중의원 의장 등 세명을 동반해 마중나와 있었다.

박철언과 야스오카의 제자인 야기 노부오의 안내를 받아 야스오카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어서 오세요. 먼 곳에서 찾아온 벗을 만난 기분입니다." 회갑에 이른 야스오카는 서른일곱살의 젊은 나를 오랜 친구처럼 정답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세계 정세와 동북아 문제를 포함해 한.일관계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광범위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날 야스오카가 한.일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한.일 양국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입니다." 일의대수, 그러니까 '한 가닥의 띠와 같은 좁은 물을 사이에 둔 관계'라는 말이었다. 현해탄을 한 가닥의 띠로 보는 절묘한 표현이었다.

64년의 일본은 활력이 넘쳤다. 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는 도쿄는 열아홉 살 때의 내 기억과는 딴판이었다.

패전 후 참혹한 폐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깊고 끈질긴 후유증을 제외하면 모든 게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네다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 동양 최초의 모노레일을 깐다느니,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시속 250km로 달릴 신칸센(新幹線) 부설공사를 한다느니 하는 뉴스가 내 귀를 아프게 두드렸다. 도심의 건설용 크레인들은 내 눈을 부릅뜨게 했다.

"이제 우리 사전에 '전후(戰後)'라는 단어는 없다"라고 큰 소리 친 일본 정치가의 자신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급속히 발전하는 도쿄의 모습은 나의 자존심과 각오를 자극했다. 우리도 어서 이렇게 해야지, 나는 속으로 이 독백을 얼마나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내가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은 100만엔이었다. 그때 우리 정부의 형편으로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박 대통령이 국가의 체면을 고려했던 것이다.

최정렬 비서는 돈이 아깝다고 식사를 역 구내에 가서 하자고 조르기도 했다. 참치 초밥 몇 점에 500엔이 입 속으로 꿀꺽 사라지니 아깝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협상단의 품위를 강조했다.

국가의 체면을 생각하자니 나의 '젊음'도 큰 부담이었다. 가는 곳마다 만남과 대화와 술이 있었다. 또 시중드는 여성이 있었다. 술에도 취하지 말아야 했고, 혈기도 눌러야 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늘 이겨야 했다. 일본 경시청의 카메라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상황에서 어떤 경우에도 국가의 체면을 손상시킬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93년, 정치 격랑에 휘말려 장기간 일본에 체류하게 됐을 때였다. 다케시다 총리가 병원에 입원한 나를 찾아왔다. "우리 경시청과 내각조사실(한국의 국정원) 쪽에서 다 뒤졌는데, 일본 금융기관에 개설한 통장이 하나도 안 나오더군요. 64년의 행적도 너무 깨끗했고요." 다케시다 총리는 웃으며 "정치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일본에 자주 드나들고 일본 기업들과 거래했으면 통장이나 하나 만들어 놓을 일이지…" 라고 말했다. 그는 "몇몇 일본 정치가가 뜻을 모아 당신에게 매월 일정한 생계비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막후 협상을 맡아 일본 열도를 순방하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산업현장을 보았다. 내가 조국으로 돌아가 경제 쪽에서 일할 기회가 온다면 그 모든 것이 나의 귀중한 재산이 될 것이란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다. 물밑 협상이라는 어렵고도 긴 임무를 완수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드디어 나에게 경영자가 될 기회가 왔다. 박 대통령이 나를 대한중석 사장으로 보낸 것이다.


2004년 08월 22일 [중앙일보 연재]


첨부파일 첨부파일 :
No File!
게시판 List
이전글 대한중석 인재들 [2004년 08월 23일]
다음글 대일 교섭의 막후 [2004년 08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