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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교섭의 막후 [2004년 08월 19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72



▶ 1976년 일본 철강업계 인사들과 환담하고 있는 필자(맨 오른쪽), 가운데가 야스오카다.


1961년 군정(軍政)이 민간인 출국을 1호로 허락한 인물은 박철언일 것이다. 올해 78세인 그는 현재 하와이에 살고 있다. 그의 인생도 참 특이하다.

평북 강계 출신인 그는 광복 후 일본에 들어가 미 극동군총사령부 번역 문관이 되었고, 휴전 이후 판문점의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에도 나와 있었다. 판문점에 근무하는 그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이승만 정권 후반기였다.

그가 극진히 모시는 일본인이 야스오카였다. 1904년에 태어난 야스오카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폭넓게 섭렵했으며 도쿄대 재학시절에 쓴 '중국의 사상 및 인물 강화'란 저서로 명성을 날렸다. 해군 대장 야시로가 26세의 그와 양명학(陽明學) 토론을 벌이다 꿇어앉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야스오카는 한국의 퇴계 선생을 유난히 존경하는 친한파였고, 정치적으로 우파였으며 전후 일본 정.재계 지도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막강한 막후 실력자였다.

박철언과 야스오카-. 이 라인은 장면 정권과 박정희 정권의 대일 교섭 막후에서 귀중한 창구 역할을 맡았다. 내가 포철에 대일청구권 자금을 끌어다 쓰는 과정에도 큰 도움을 줬다.

장면 총리가 서울 반도호텔 8층에서 집무하던 1961년 4월 하순~5월 초순. 박씨는 야스오카와 장 총리의 편지를 들고 비밀리에 서울과 도쿄를 오갔다. 한.일회담 재개의 전초 단계로 일본 중의원 노다 우이치 일행이 방한했을 때는 아무도 몰래 노다를 반도호텔 8층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도 우리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을 원하고 있었다.

장 총리는 다리를 놓아준 박철언에게 수고했다며 서울시 전차 200대 교체사업을 선물로 내놓았다. 그러나 곧 5.16이 터졌다. 뜻밖의 전차 교체 이권까지 물거품으로 날린 그를 군정이 모처로 연행한 것은 5월 하순이었다. 서슬 퍼런 혁명군이 정릉 셋집에서 그를 잡아 지프에 태웠다. 위태위태한 과정을 거쳐 오해가 풀린 그가 나에게 연락해 왔다.

이제는 스스로 끊어버린 대일 막후 교섭의 줄을 군정 스스로 회복해야 할 차례였다. 나는 김재춘 특무대장을 박철언에게 소개했다. 그러나 김씨를 만나 본 박철언은 "특무대장은 '외교적 정서'에 안 맞는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의 주선으로 박철언의 출국 허가가 떨어졌다. 나는 "일본으로 들어가되 항상 연락은 닿게 해놓으라"고 다짐을 놓았다. 9월 하순에 나는 박정희 의장에게 이용희 교수를 일본 특사로 추천했다. 민족대표 33인 이갑성 선생의 아들이니 모양새도 좋아 보였다. 이 교수는 '특명전권대사'의 명함으로 10월 초 도쿄로 날아갔다.

물론 나는 박철언에게 연락해 뒀고 그는 야스오카의 이해와 협력을 얻어 도쿄의 거물들과 줄줄이 만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짜줬다. 이 교수는 그 덕분에 당시 이케다 총리의 사저로 초청받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박정희-이케다 회담'의 싹이 텄다.

이승만 정권의 한.일회담은 형식적 차원에서 끝났다. 장면 정권은 혼란과 무기력 속에서도 박철언을 통해 막후 노력을 기울이며 공식협상의 디딤돌로 삼으려 했다. 박 정권 출범기에도 한.일 접촉은 시급한 과제였다. 미국은 원조를 줄여가면서 계속 압력을 넣었고, 한국은 급했다.

64년 내가 장기간에 걸쳐 대통령 특사로 파견되었을 때 나는 박철언과 더불어 야스오카를 찾았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초면인 나에 대한 인상을 그 노인은 배석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침착 중후한 인물이오. 마치 큰 바위를 대하는 듯한 무게가 있었소." 이는 5년 뒤 포철이 일본에서 순조롭게 협력을 받게 되는, 뜻밖의 행운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2004년 08월 19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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