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 영상
  • 연구결과물
  • E-카다로그
  • 발전기금
  • HOME
  • 박태준의삶
  • 쇳물은 멈추지않는다
  • 인쇄
  • 글자크기
  • 확대
  • 초기화
  • 축소

게시판 List
술의 세 조건 [2004년 08월 15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679



▶ 1974년 6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필자의 안내로 포철을 둘러보고 있다. 육 여사는 그해 광복절에 서거했다. 박 대통령 뒤로 스커트 차림의 박근혜씨가 보인다.


1964년 정초였다. 청와대 박종규 경호실장이 "각하께서 찾는다"는 연락을 해 왔다. 당시 나는 군으로 복귀하거나 정계로 진출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미국 유학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미국과 세계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도와준 주한 미 대사관의 문정관 해리슨은 "모두가 감투를 못 써 난린데 당신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청와대 2층 내실로 안내됐다. 육영수 여사도 함께하는 저녁 식탁이 마련돼 있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정종을 들고 나왔다. 부산에서의 오붓했던 한때로 돌아간 듯했다. 육 여사가 손수 내 잔을 채워주며 "요새도 술 많이 하세요?" 라면서 눈을 흘겼다. 부산에서 박 대통령과 내가 술을 마셔도 너무 마셨다는 뜻이었다.

올해 광복절은 어느덧 육 여사 30주기이다. 고인은 타고난 성품이 그렇기도 했지만, 내게 유난히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흑백TV를 통해 생중계된 74년 광복절, 그날의 그 느닷없는 총격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내가 육 여사를 마지막으로 만난 때는 비극이 일어나기 한 달 보름 전인 74년 6월 28일이었다. 박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포철을 방문한 것이다. 포철의 2기 공사가 본궤도에 오르고 있던 때였다. 육 여사는 박 대통령, 근혜씨와 함께 포철 곳곳을 돌아보았다. 육 여사의 따뜻한 격려는 딱딱한 쇳물공장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

술병이 비었다. 또 한 병이 나왔다. 신년 덕담을 나누자고 부른 것은 아닌 눈치였다. 대통령이 본론을 꺼냈다. "여보게 나를 도와줘. 도망칠 궁리는 그만하고. 경제개발 5개년계획 추진을 위해선 대일 청구권 자금을 받는 게 급선무야."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대일 청구권 협상은 정부 부처 소관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공식 외교채널만으로는 안 되겠네. 일본 사정도 생각보다 복잡해. 그쪽 지도층에 광범위한 우호 분위기를 잡아놓아야 해."

박 대통령이 서류를 꺼냈다. 일본에서 온 편지였다. 자민당 부총재 오노가 보낸 그 편지는 결국 내 유학의 꿈을 무산시켰다. 오노는 비밀 특사를 요구했으며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을 보내달라고 했다.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 통역이 필요없을 만큼 일본어에 능통하고 일본문화를 잘 이해하는 사람, 가능하다면 일본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

"세 조건을 다 채울 사람은 자네 밖에 없어. 워낙 중대한 협상이니 두 사람을 더 동행시키겠네."

정초의 술대접 자리에서 나는 꼼짝없이 발목을 잡혔다. 박 대통령이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자네는 집도 없더군. 내가 부려먹기만 해서 애들 엄마한테 미안하게 됐네.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집이라도 있어야지."

54년 결혼한 후 그때까지 10년 동안 셋방을 15차례 옮겼다는 아내는 그 돈과 전세 뺀 돈을 합쳐 서울 북아현동에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했다. 36년간 살게 된 집이었다. 그 정든 집을 나는 2000년에 팔았다. 집을 판 돈 중 10억원은 어느 재단에 기부했다. 그 집을 사는 데 들어간 박 대통령의 하사금만큼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특사 자격으로 일본 열도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조국은 한.일협정 반대시위로 들끓었다. 평양과 조총련도 합세했다. 나는 착잡했다. 이런 협상을 해야 하느냐는 회의도 스쳐갔다. 그러나 반드시 경제 건설의 밑천을 잡아야 할 시기였다. 나는 외교행낭을 이용해 대통령 앞으로 여러 차례 메모를 넣었다. "어떤 난관에 봉착해도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건의였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그때 우리를 맹렬히 비난했던 북한 정권이 대일 청구권 자금을 받겠다고 나섰다. 너무 늦었지만 북한도 기필코 받아내야 한다. 그래서 빈곤 극복과 경제 건설의 종자돈으로 삼아야 한다. 늙었지만 나도 도울 일이 있다면 뭐든 돕고 싶다.


2004년 08월 15일 [중앙일보 연재]


첨부파일 첨부파일 :
No File!
게시판 List
이전글 관부연락선 [2004년 08월 16일]
다음글 박 대통령과 인연(2) [2004년 0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