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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부총리와 갈등 [2004년 08월 09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971


▶ 1967년 10월 3일 열린 포항제철 기공식에서 장기영 부총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장 부총리는 나와 갈등을 빚다 이날 오전 부총리직에서 해임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나를 종합제철소 건설 책임자로 내정한 것은 1967년 9월 초순이었다. 그 때 대한중석 사장을 맡고 있던 나는 영국 런던에서 중석(텅스텐) 판매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대한중석이 종합제철 건설을 맡게 됐고, 박 사장이 종합제철 건설추진위원장에 내정되었으니 즉시 귀국하라."서울에서 날아든 '장기영 부총리 지시, 대한중석 고준식 전무 발송' 명의의 전보를 받아든 나는 문득 나이를 생각했다. 만 40세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불혹(不惑), 이 말에 매력을 느꼈다. 무슨 일이든 흔들림 없이 덤벼볼 나이가 된 것이다. 답신을 보냈다."3대 전제조건이 수락되면 투자하겠으며, 즉시 귀국은 불가함."내가 상대해야 할 종합제철소라는 괴물에 맞서, 덥썩 물기보다 한발 물러나 탐색전부터 벌이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외국 차관 도입 협상을 대한중석이 맡고▶부족한 자금은 정부가 충당하고▶대한중석의 민간주식 배당은 보장하되 정부주식 배당은 제철소 준비금으로 대치한다. 이것이 내가 내건 3대 전제조건이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남은 텅스텐 판매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핑계로 즉시 귀국이 어렵다고 버텼다.9월 30일에야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부총리실로 불려가 장 부총리를 만났다. 그의 표정은 밝았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단계서부터 소망해온 종합제철소. 5년이나 엄두를 못 내던 바로 그 제철소 기공식이 열리니 기쁜 것은 당연했다.그는 추진위원장으로 내정된 나에게 서류 뭉치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했다. 그것이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우리를 희롱하게 되는 KISA와의 합의각서였다. KISA는 '대한 국제제철 차관단'의 영문 표기의 준말이다. 한국 제철소 건설의 차관 조달을 맡기로 한 국제컨소시엄이다. 미국.영국.독일(서독).프랑스.이탈리아 등 5개국 8개사가 참여했고, 1966년 12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결성됐다.한국은 당시 절대 빈곤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외환 금고는 바닥 수준이었고, 국제 신인도 역시 제로 상태였다. 종합제철소 건설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궁여지책으로 한국을 긍휼히 여긴 선진국들이 부담을 나눠 맡기로 해 탄생한 것이 KISA였다.부총리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서명을 거부했다. 추진위원장에 내정된 상태이지 임명된 것이 아니며, 서류 검토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성이 오간 끝에 우리는 굳어진 얼굴로 헤어졌다.내가 합의각서를 쥐고 찾아간 곳은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김흥한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각서를 꼼꼼히 검토한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돈인데, 총 자금규모. 자금조달 시기. 분담비율이 빠져 있고, 어느 조항에도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정해 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KISA와의 교섭에서 우리가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했다.10월 2일 오전, 부총리실에서 "내일 포항제철 기공식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소문이 청와대까지 들어갔는지 이날 오후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나를 불렀다. 그는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나무랐다. 꼬치꼬치 따지면 미움만 사니 기공식에 참석하고, 앞으로 부총리와 잘 해보라는 말씀이었다.착잡한 심정이었다. 합의각서의 문제점을 보고하자니 그동안 KISA와 협상해온 장 부총리를 뒤에서 해코지하는 셈이고, 승복하자니 제철소 건설의 암초를 덮어두는 격이었다. 고심 끝에 나는 인심 잃는 쪽을 택했다. 합의각서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나가는 내 보고를 들으면서 박 대통령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결국 장 부총리가 유탄을 맞았다.다음날인 10월 3일, 포항제철 기공식이 포항시 공설운동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그 시각에 나는 서울의 대한중석 사무실에 있었다. 라디오 낮 뉴스에 장기영 부총리의 해임소식이 나왔다. 인간적으로 마음이 아팠다. 종합제철소를 둘러싼 갈등이 부총리 해임으로 이어진 것이다.그러나 장 부총리는 역시 담대한 성격의 사나이였다. 자신의 해임 소식을 듣고도 의연하게 기공식 축사를 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린 지 4300년 만에 종합제철공장을 건설하게 됐습니다…." 특유의 침착한 목소리로 그는 포철 건설의 감개와 포부를 피력했다.


2004년 08월 09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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