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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와 결별 [2004년 08월 04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678

 

 ▶ 1992년 10월 10일 민자당 최고위원이었던 필자는 광양제철소 영빈관을 방문한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左)와 어색한 모습으로 악수를 했다.


1992년 10월 2일. 나는 25년에 걸친 포스코 대역사를 마무리했다. 연산 2100만t의 조강 생산 체제를 갖춘 것이다.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고, 이튿날엔 국립묘지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당신과의 아주 오래된 약속을 마침내 지켜냈다는 보고를 올렸다. 나는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곧바로 세장의 사표를 썼다. 포스코 회장직, 민자당 최고위원직, 민자당 김영삼 대통령후보 선거대책위원장직이 그것이다.

임원.사원은 물론 사원 가족들까지 본사에 나와 시위하며 나의 사퇴를 가로막았다. 결국 긴급이사회에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됐고, 나는 포스코의 해외부문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쯤 지난 10월 10일. 나는 광양제철소 영빈관에서 쉬고 있었다. 김영삼 후보가 오전 10시쯤 나타났다. 기자들도 잔뜩 몰려왔다.

25년 대역사의 준공식엔 오지 않았다가 갑작스레 먼 길을 달려온 YS. 그의 독특한 화술은 이번에도 논리적 설득과는 거리가 있었다. "인간 김영삼을 믿어 달라." 여기에만 매달렸다. 무려 4시간이나 마주 앉아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선대위원장직을 거절했다.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정계에서 손 씻고 경제에 전념하겠다는 나의 결심이었다. 그날 회동을 끝낸 뒤 YS가 기자들에게 했던 말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박 최고위원은 정치를 잘못 들어선 길로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평생을 바쳐온 경제 건설에 매진하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 같아."

또 하나는 YS와는 함께 일할 수 없겠다는 나의 판단이었다. 3당 합당 이후 2년10개월 동안 나는 YS를 아주 가까이서 관찰해 왔다. 그의 식견을 알게 됐고, 볼 것 안 볼 것 다 봤다.

YS를 수행해 러시아를 다녀온 박철언 장관의 얘기도 들었다.JP의 '몽니'란 말에 빗댄다면 세간에 '물태우'로 통한 대통령에게 그가 부려대는 '뗑깡'도 보았다.

내가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려 하자 '제한 경선론'으로 막아서는 YS의 독특한 민주주의도 경험했다. 그는 이런 행태를 '정면돌파'라 불렀지만 내 성미엔 맞지 않았다.사실 90년의 3당 합당은 '통합과 화해'라는 명분과 달리 '오월동주(吳越同舟)'였다.

3김의 완벽한 지역분할 구도와 여소야대 속에서 노 대통령의 태생적 불안의식, YS의 대권 욕망, JP의 내각제 미련이 맞물린 것이다. 항상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선을 앞두고 나는 장기 해외출장을 떠났다. 수주를 위해 중국.베트남.미얀마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중국은 우리 일행의 승용차에 대규모 경호차량까지 동원하는 등 국빈급 대접을 했고, 베트남에선 두 모이 서기장이 직접 나를 응대했다.

그는 나의 경제전략에 관한 충고를 경청하더니 "당신을 더 일찍 만났어야 했는데…"라며 다른 약속까지 취소시켰다. 진지한 그의 표정엔 인민과 조국을 향한 진실이 어른거렸다. 인상 깊은 인물이었다.

미얀마에선 군사정권 실세가 공항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만나자 거수경례를 붙이며 이렇게 외쳤다. "형놈!".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식으로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형님'이라는 한국말을 익혔는데 정작 '실전'에서 혀가 꼬여 이렇게 발음했던 것이었다.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나에게 국민당 정주영 후보 측에서도 연락해 왔다. 집요할 정도로 도움을 청했지만 나는 끝내 거절했다. 민자당 탈당파는 인편으로 거취를 묻는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나는 '각자의 장래가 걸린 문제이니 스스로 판단하라'고만 말해줬다. 어느 날 정석모 전 의원이 '절대 비공개'를 약속하면서 YS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를 부탁해왔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해 "고생이 많겠다. 잘 되기 바란다"는 의례적인 내용으로 써보냈다. 그런데 그게 선거일 전날 공개됐다. 당선이 확실한 YS에게 내가 비밀리에 '구애 작전'을 한 꼴이 됐다. 그들의 배신에 나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스스로 방어수단도 강구해야 했다. 그래서 민자당 국회의원 배지를 던져 버렸다.올해 봄에 발간된 어느 잡지의 'YS 금고지기-홍인길 인터뷰'에선 홍씨가 문제의 서신과 관련해 "하도 급해 비공개 약속을 깼다"고 고백했다.

그해 대선에서는 예상대로 YS가 당선됐다. 그와 나는 광양에서 작별할 때 "인간적으로 잘 지내자"고 했다. 그러나 그 말과 달리 나는 이후 기약 없는 해외 유랑길에 올라야만 했다. 


2004년 08월 03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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