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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 울타리 [2004년 08월 02일]
등록일 : 2014-07-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65

전두환씨 "포철은 박 선배가 관리해야죠"

 

▶ 1982년 국회 재무위원장 시절의 필자(앉아 있는 사람). 진행해야 할 의사 일정이 칠판에 빼곡이 적혀있는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필자를 둘러싸고 입씨름을 하고 있다.


대신 국보위 참여 요청…'정치 외도' 입문

1980년 가을 한강맨션에서 만난 전두환 국보위 의장이 나에게 불쑥 제의한 자리는 '국가보위입법회의 부의장'이었다. 다음해 봄 총선 때까지 과도기적 입법기구를 둔다는 거였다. "국보위에는 기존 비상대책위가 있지 않습니까?" 나의 반문에는 정중한 거절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건 급하게 만들어 인선에도 문제가 있고요, 아무래도 박 선배께서 부의장을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나는 발을 조금 더 뺐다.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일 것 같습니다. 포항제철만 해도 아직 난제가 많습니다." "너무 포항제철 걱정만 하십니다. 포항제철이야 박 선배께서 계속 관리하셔야지요. 이건 약속 드립니다."나는 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정치 외풍에서 포철을 보호해 줄 울타리, 이제 내가 직접 이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쳐준 것보다 허술하겠지만 나는 제2제철소를 완공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회사의 보호막이 돼야 했다.

때마침 이 무렵 포철은 제2제철소 입지 선정 문제로 정부 측과 대립하고 있었다. 우리는 광양만을 주장하고, 정부는 아산만을 밀었다. 제2제철소 입지 선정 이야기는 뒤에 다시 하겠지만, 입지 선정은 제철소의 성패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광양이냐, 아산이냐. 이 선택은 포철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였다.

"법률은 문외한이니, 경제분야에서 일하면 어떻겠습니까?"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한.일 경제협력이 원만해지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포철 대표와 겸직이 가능한지 법률 검토를 요청했다. 그는 즉시 법제처장에게 전화 지시를 내렸고, 30분쯤 지나 '포철은 상법상 회사이므로 하자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에게는 경제 제1위원장과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회장이란 감투가 떨어졌다. 정치는 나에게 있어 외도(外道)다. 체질적으로 안 맞는다고 여겨왔다.

5.16 군정 막바지였던 63년 초가을, 박 대통령은 장충동 공관으로 불러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군으로 돌아가든지 출마해라." 그때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동안 동료.후배가 열심히 사단이나 연대를 지휘했는데 군에는 못 돌아갑니다. 또 정치라는 게 가만히 보니까 누가 손 들라 하면 손을 들어야 하는데, 저 혼자 손을 번쩍 들고 반대요 하면 난리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이 빈번히 벌어질 텐데 저 같은 놈 집어넣어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 성질 잘 아시잖습니까."

그랬던 내가 반(半) 자발적으로 정치판에 들어선 것이다. 이듬해 봄에 나는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뽑히고, 초선으로는 파격적으로 국회 재무위원장에도 피선됐다. 포철 조직에 변화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내가 포항을 떠나 서울에 있어야 할 때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을 변경했다. 나는 신설된 회장직을 맡고, 고준식 수석부사장이 사장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래도 이때는 정치 일선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어 광양제철소 건설에 더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다행히 포철은 순항을 거듭했다. 그러던 내가 정치 전면에 동원된 때는 90년 새해 벽두였다. 여소야대.3당 합당 등 정치 격랑을 맞아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더 깊숙이 정치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번갈아 국가 최고권력자가 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사에서 나의 생도였지만 당시에는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육사 수석입학.수석졸업 예정자였던 김성진(체신부 장관 역임)생도 등이 기억에 남는다.

김 생도와 백운택(육군 1군단장 역임)생도는 학사학위 수여를 반대하는 문교부 조치에 반발, 생도들을 대표해 탈영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육군본부로 '쳐들어 가기 위해' 서울 용산 일대에서 얼쩡거리던 두 생도는 찾으러간 나에게 붙잡혀 무사히 육사로 돌아왔다.전.노, 두 사람과의 인연은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정반대의 흔적을 남겼다.

전씨의 경우 나를 정치에서 반발쯤 물러나 있도록 배려해줘 포철을 상처없이 내 의지대로 끌고 나갈 수 있었다. 반면 노씨는 정치적 곤경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를 정치 전면에 배치하는 바람에 나와 포철에 씻기 힘든 깊은 상처를 안겨줬다. 


2004년 08월 02일 [중앙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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