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 영상
  • 연구결과물
  • E-카다로그
  • 발전기금
  • HOME
  • 박태준의삶
  • 쇳물은 멈추지않는다
  • 인쇄
  • 글자크기
  • 확대
  • 초기화
  • 축소

게시판 List
뒤바뀐 관계 [2004년 08월 01일]
등록일 : 2014-07-22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888





10·26 후 등장한 신군부 실세는 육사 제자들 

내 나이 올해로 77세. 석달 더 지나면 희수(喜壽)를 맞는다. 3년 전 폐 밑의 3.2㎏짜리 물혹을 떼어 내기도 했지만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다. 올 연말 우리 부부는 결혼 50주년인 금혼식도 앞두고 있다. 고향인 부산 기장 바닷가에는 어릴 적 집터에 지은 아담한 스틸하우스가 있다. 내게 남은 유일한 집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출과 일몰,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본다. 세상과 한 발짝 물러선 채 이처럼 고즈넉한 때도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행복한 황혼을 보내고 있다.포스코 회장.집권여당 대표.국무총리…. 돌아보면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두루 거쳤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란 다섯 대통령과도 길고 짧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상징은 한 단어로 '철(鐵)'이다. 철을 만들기 위해 나는 장년기를 모두 바쳤다. 철을 지키기 위해 곡절 많은 정치에도 발을 담갔다. 그리고 상처도 받았다. 1990년 11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때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치사가 떠오른다. "당신은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언제 어디서나 가장 앞에 서 있었다. 한국전쟁 때는 장교로 투신했고, 국가가 경제 현대화를 요구했을 때 당신은 기업인으로 나라 앞에 섰다. 국가가 미래를 위한 정치인을 필요로 할 때 당신은 또 정치인으로 그 부름에 응했다…."나는 아직도 청년 장교 시절 나의 혼에 불을 붙였던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붙잡고 있다.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은 여전히 늙은 나의 혼을 자유로이 풀어주지 않는다. 내가 지난 삶을 되짚어 보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흘러간 경험이나마 조국의 발전에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 기록이 우리 후손이 20세기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 지난 주 정기검진차 미국에 갔던 박 명예회장이 숲속을 거닐고 있다.
80년 가을. 포항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박 선배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전혀 스스럼없는 괄괄한 목소리. 전두환 국보위 의장이었다.

"비상시기에 지휘관은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너무 지키고 계십니다. 포철은 부사장에게 좀 맡겨놓고 서울로 올라 오십시오."

최고 권력자는 나를 '선배님' 또는 '박 선배'라고 호칭했다. 옛날엔 내가 말을 낮추었으나 이젠 서로 말을 높여야 했다. 옛날엔 그가 나의 후배요 부하였지만, 이젠 그가 최고 권력자요 나의 인사권자이기도 했다.

나는 다음날 오전 5시 승용차로 포항을 출발했다. 호출한 목소리로 미뤄 나쁜 일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차창 밖 단풍만큼이나 내 마음은 심란했다.

한해 전인 79년 가을. 포항제철 영일만 4기 건설을 지휘하던 중 10.26의 충격적 비보를 접했다. 이것저것 다 떠나 인간적 슬픔이 나를 짓눌렀다. 며칠 동안 집에서 두문불출한 뒤 회사로 나갔다. 이제 포철에 어떤 강풍이 불어 닥칠 것인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은 포철로선 정치 외풍을 막아준 튼튼한 울타리가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비상사태 속에서 신군부가 베일을 벗고 등장했다. 전두환.노태우.정호용.김복동…. 나에겐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54년 내가 육사 교무처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그들은 4학년 생도였다. 4년제 정규 육사 1기생(육사 11기)들은 나를 비교적 인상 깊게 기억하는 편이었다. 내가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기 바쁘게 부임한 곳이 육사 교무처장이었다. 수석졸업 선물로 금시계를 받은 신임 교무처장을 생도들은 한동안 '금시계'란 별명으로 불렀다. 또 내가 11기생들의 학사학위를 받아내느라 문교부에 얼마나 들락거렸는지도 대부분 알고 있었다. 

나와 전 의장의 인연은 50년대 후반 같은 부대의 참모장과 중대장, 대령과 대위로 이어졌다. 당시 그는 나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의 중대 병사들이 건축용 목재를 땔감으로 써버려 헌병대까지 시끄러워졌을 때 전 대위는 나를 찾아와 전후 사정을 설명하며 선처를 부탁했다. 나는 단순한 관리소홀에다 부정부패 혐의가 아닌 점을 참작해 무마해 주었다.

그러나 신군부 세력은 5.16 군사정부가 그랬듯 부정축재 조사를 가혹하게 진행했다. 당연히 최대 공기업 포철의 사장인 나에 대한 뒷조사도 샅샅이 이뤄졌다. 나는 아무런 탈없이 지나갔다. '박 대통령에 이어 나 자신이 포철의 울타리'가 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있는 사이에 승용차는 한강을 건넜다. 마치 접선하듯 연락이 오간 끝에 차가 멈춰선 곳은 한강이 내다보이는 한강맨션 주차장. 보안사령부의 안가 중 하나였다. 맨션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뜻밖에 편안했다. 경호원조차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군 선배에 대한 배려로 느껴졌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예. 오랜만입니다." 부담 없이 악수를 했다. 둘 다 군에서 잔뼈가 굵어온 만큼 전 의장이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선배님께서 도와 주셔야겠습니다." "포철을 잘 관리하고 키워 나가는 것이 돕는 일 아니겠습니까?" "철이야 박 선배께서 대가 아니십니까?" 이 한마디에 조금 긴장을 푸는 나에게 그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필자 약력>
▶1927년 경남 양산 출생 
▶46년 일본 와세다대 기계공학과 수료 
▶48년 육사 졸업(6기) 
▶61년 5월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9월 최고회의 상공담당 최고위원
▶64년 대한중석 사장 
▶68년~현재 포스코(옛 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
▶80년 입법회의 경제분과위원장(11, 13, 14, 15대 의원)
▶90년 민정당 대표위원, 민자당 최고위원 
▶93~97년 일본 거주 
▶97년 포항 북구 보선 당선, 자민련 총재, DJT 연대
▶2000년 국무총리  
 


2004년 08월 01일  [중앙일보 연재]


첨부파일 첨부파일 :
No File!
게시판 List
이전글 포철 울타리 [2004년 08월 02일]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