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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유랑 후 국가부도위기 극복에 앞장서다(1993년-2000년)

  • 김영삼과의 정치적 갈등은 박태준을 1993년 봄날부터 1997년 봄날까지 4년여 동안 해외유랑의 길에서 떠돌게 했다. 그가 조국으로 돌아와 포항시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밝힌 때는 1997년 5월. 그해 7월의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정치적 명예회복과 마지막 국가봉사의 기반을 잡은 그는 자민련 총재로 취임해 그해 대선에서 김종필과 함께 김대중 후보와 연대했다. 박태준의 논리와 명분은 국가경제의 험난한 위기(IMF사태) 속에서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화합을 국가적 시대적 동력으로 만들어 희망찬 21세기를 열어가자는 것이었다. 김대중의 신승은 국가부도 위기 속에서 대기업들의 구조조정과 각종 시스템 혁파 등 한국경제 대개조의 시절을 맞아 박태준에게 ‘재벌개혁의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게 만들었다.

    공동여당의 대표를 거쳐 2000년 1월 뉴밀레니엄의 첫 총리를 맡았다가 김대중과 김종필의 분열 속에서 그해 5월 정계은퇴와 공직사퇴를 동시에 선언한 박태준은 몇 년째 자신의 건강을 괴롭혀온 신병과 투쟁해야 하는 어려움을 맞고 있었다.